반도체 산업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첨단 공정’입니다. 미세 공정, 최첨단 기술, 기술 격차와 같은 단어는 곧 경쟁력과 높은 수익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실제 반도체 산업의 수익 구조를 들여다보면, 첨단 공정이 항상 높은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반도체 가치사슬의 관점에서, 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공정이 반드시 가장 좋은 수익성을 보장하지 않는지 그 구조적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반도체 가치 사슬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반도체 산업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설계, 제조, 그리고 후공정 및 패키징 단계입니다.
이 중 첨단 공정 논의는 주로 제조 단계, 특히 미세 공정 경쟁에 집중됩니다. 하지만 가치 사슬 전체를 보면, 각 단계가 만들어내는 수익 구조와 리스크는 상당히 다릅니다. 즉, 기술의 난이도와 수익성은 항상 비례하지 않습니다.
첨단 공정은 왜 ‘비싸질 수밖에 없는가’
첨단 공정이 수익성을 압박하는 첫 번째 이유는 투자 비용의 폭발적인 증가입니다.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필요한 장비, 공정 조건, 관리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니다.
이로 인해 첨단 공정에서는 막대한 초기 투자가 선행되며, 일정 수준 이상의 가동률이 확보되지 않으면 순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즉, 첨단 공정은 기술적으로는 앞서 있지만, 고정비 부담이 매우 큰 구조를 가집니다.
수율과 안정성의 문제가 수익성을 좌우한다.
반도체 공정에서 말하는 수율이란, 하나의 웨이퍼에서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칩이 얼마나 나오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한 장의 웨이퍼에서 100개의 칩을 만들었을 때, 그중 90개가 정상 작동하면 수율은 90%, 60개만 작동하면 수율은 60%입니다.
이 수율은 반도체 수익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웨이퍼 한 장을 만드는 비용은 수율이 높든 낮든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수율이 낮아질수록 정상 제품 한 개당 원가는 급격히 상승합니다. 즉, 수율은 기술 지표이면서 동시에 원가 구조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첨단 공정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두드라집니다.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회로 구조는 복잡해지고, 작은 오차에도 불량이 발생한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초기 단계의 첨단 공정에서는 웨이퍼를 투입해도 예상보다 많은 칩이 불량으로 판정되는 경우가 흔하며, 이 시기에는 생산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성숙한 공정에서는 공정 조건이 충분히 축적되어 있고, 수율도 안정적인 수준에서 유지됩니다. 이 경우 단가 자체는 낮을 수 있지만, 불량률이 낮고 생산량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익성은 오히려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이처럼 첨단 공정은 기술적으로는 앞서 있지만, 수율이 안정되기 전까지는 높은 비용과 낮은 수익성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도체 산업에서는 “가장 미세한 공정이 항상 가장 돈이 되는 공정은 아니다”라는 말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결국 수익성은 기술의 앞선 정도보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가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 ‘포지션’
반도체 산업에서 기술은 경쟁의 전제 조건일 뿐, 수익성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닙니다. 실제로 같은 기술 수준을 가지고 있더라도, 어떤 역할과 위치를 선택했는지에 따라 사업의 성격은 전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산업의 최전선에 위치한 기업은, 시장이 요구하기도 전에 새로운 공정과 기술을 먼저 도입해야 합니다. 이 포지션에서는 고격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행 투자가 이루어지며, 시장의 방향이 예상과 다를 경우 투자 회수가 지연되거나 실패할 위험도 함께 존재합니다. 이 위치는 기술적으로는 선도적이지만, 수요를 만들어내야 하는 부담까지 동시에 짊어지는 자리입니다.
반면 특정 고객군이나 용도에 맞춘 안정적인 영역에 위치한 기업은, 기술 도입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릴 수는 있지만 시장 수요가 확인된 이후에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가격 협상력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수요의 방향성이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매출과 투자 회수의 가시성이 높습니다. 기술 경쟁보다는 고객 관계와 운영 효율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에서는 “얼마나 앞선 기술을 보유했는가”보다, 그 기술을 어떤 시장, 어떤 고객, 어떤 역할에 연결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기술은 수단이고, 포지션은 전략이라는 점에서, 반도체 산업은 기술 산업이면서 동시에 전략 산업이라는 성격을 가집니다.
마무리
첨단 공정은 분명 반도체 산업에서 중요한 기술적 진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높은 수익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반도체 산업을 이해할 때는 “누가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는가”보다 “누가 비용, 수율, 수요를 가장 균형 있게 관리하고 있는가”를 함께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