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를 하다 보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실적은 나쁘지 않은데, 왜 주가는 오르지 않을까?”, “호재 뉴스가 나왔는데도 왜 주가는 힘이 없을까?”
이때 많은 투자자들은 막연히 “시장이 이상하다”거나 “수급이 안 좋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구조적인 이유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핵심 개념이 바로 ‘주식 희석(dilution)’ 입니다.
주식 희석이란 무엇인가?
주식 희석이란 아주 간단히 말해, 회사의 가치가 나뉘는 것입니다.
기업의 전체 가치가 100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회사가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 유통 주식 수가 늘어나면, 기존 주주가 차지하던 몫은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즉, 회사가 커지지 않았는데 주식 수만 늘어나면 한 주당 가치가 낮아지는 구조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희석’입니다.
유상증자 – 가장 직관적인 희석
유상증자는 기업이 돈을 조달하기 위해 새로운 주식을 발행하고 투자자에게 파는 방식입니다.
겉으로 보면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사업 확장을 위해 자금을 조달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다”
하지만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주식 수가 늘어났다는 건 내가 가지고 있던 지분 비율이 줄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상 증자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성장 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라면 긍정적일 수 있고, 장기적으로 이익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회사는 정말로 그 돈을 수익으로 전환할 능력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불확실하다면 유상증자는 주가에 부담이 됩니다.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 보이지 않는 희석
유상증자는 눈에 보이는 희석입니다. 공시가 나오는 순간 “주식이 늘어난다”는 게 명확합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더 자주 문제를 만드는 건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같은 메자닌(mezzanine)입니다.
겉으로는 채권이지만, 일정 조건이 되면 주식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어
- 전환사채(CB, Convertible Bond)
-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인데, 투자자가 원하면 정해진 조건에 따라 주식으로 전환(conversion)할 수 있는 권리가 붙어 있습니다.
- 즉, “채권 + 주식 전환권” 구조입니다.
- 신주인수권부사채(BW, Bond with Warrant)
-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인데, 투자자에게 신주를 ‘살 수 있는 권리(신주인수권, warrant)’가 별도로 붙어 있습니다.
- 즉, “채권 + 신주인수권(옵션)” 구조입니다.
여기서 핵심 차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CB는 ‘채권이 주식으로 바뀌고(전환)’, BW는 ‘채권은 그대로 두고 신주를 살 권리가 따로 있다(워런트)’.
CB와 BW의 결정적 차이점 (주주 관점)
- CB의 특징(전환사채)
- 투자자가 전환하면 채권이 사라지고 주식이 생깁니다.
- 기업 입장에서는 부채가 줄고 자본이 늘어 재무구조가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 주주 입장에서는 전환이 진행될수록 주식 수가 증가(희석)합니다.
- BW의 특징(신주인수권부사채)
- 신주인수권을 행사하면 새 주식이 생기지만, 채권은 그대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 즉, 회사는 주식도 늘고, 채권도 남아 부채 부담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 신주인수권(워런트)은 분리되어 거래될 수 있는 경우가 있어, 구조가 더 복잡해집니다.
- 주주 입장에서는 권리 행사 시점에 희석이 발생하고, 동시에 오버행(잠재 매도 물량) 부담이 커집니다.
- 신주인수권을 행사하면 새 주식이 생기지만, 채권은 그대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정 조건이란 무엇인가?
초보자들이 가장 헷갈리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CB/BW는 아무 때나 주식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계약서(발행조건)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대표적으로 아래 조건들이 핵심입니다.
전환가액 / 행사가액 (Conversion Price / Exercise Price)
- CB: 전환가액 = 주식으로 바꿀 때 적용되는 가격
- BW: 행사가액 = 신주인수권으로 주식을 살 때 적용되는 가격
이 가격이 낮을수록 투자자에게 유리하고, 기존 주주에게는 희석이 더 큽니다.
전환청구기간 / 행사기간
- CB는 전환청구기간(언제부터 언제까지 전환할 수 있는지)이 정해져 있습니다.
- BW는 행사기간(언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이 정해져 있습니다.
리픽싱(전환가액/행사가액 조정) 조항
가장 중요한 실무 포인트입니다.
- 주가가 떨어지면, 전환가액/행사가액을 아래로 조정해 주는 조항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이 조항이 있으면 주가가 하락할수록 투자자는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주식을 받을 수 있어 희석이 확대될 수 있습니다.
주주 관점에서는 리픽싱이 사실상 이렇게 작동합니다.
“주가가 떨어지면 → 전환가격이 내려감 → 전환 주식 수가 늘어남 → 희석 확대”
즉, 하락이 희석을 부르고, 희석이 또 하락 압력을 만드는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 / 콜옵션
투자자가 “돈을 먼저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풋옵션)가 있으면 기업 현금흐름이 약할 때 유동성 위기로 번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업이 조기상환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가 있으면 회사가 상황에 따라 희석을 일부 통제할 수 있습니다.
전환 / 행사의 트리거(조건부 조항)
일부 계약에는 “주가가 특정 수준을 넘으면 전환이 유리해진다” 같은 사실상의 트리거가 존재합니다.
전환 자체가 의무는 아니어도, 주가가 오를수록 전환(행사) 유인이 급격히 커집니다.
왜 CB/BW는 주가에 상승장에서도 부담이 될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가가 전환가액(또는 행사가액)보다 충분히 높아지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채권을 주식으로 바꾸거나(전환), 권리를 행사해(신주 인수) 차익을 실현하는 것이 유리해집니다.
그 결과,
- 주식 수 증가(희석)
- 전환/행사로 확보한 물량의 매도 가능성(오버행)
- 상승 탄력이 둔화
즉, “호재로 주가가 오르는 국면”에서도 CB/BW는 상단을 누르는 압력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스톡옵션과 주식 보상 – 보이지 않는 비용
기업이 임직원에게 주식을 지급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톡옵션입니다.
스톡옵션은 기업 성장에 긍정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 주주의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잠재적 희석 요인입니다.
특히 IT·바이오 기업에서는 스톡옵션 규모가 상당히 큰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 실적이 좋아 보여도 실제로는 “주식 수가 계속 늘어나는 구조”일 수 있습니다.
주가 희석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
주식 희석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음 조건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 장기적으로 이익이 증가할 것
- 주식 수 증가보다 이익 증가 속도가 빠를 것
- 자본 사용의 목적이 명확할 것
이 세 가지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 기업의 주가는 시간이 갈수록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